터미널 사람들은 나를 "임계장, 임계장"하고 불렀다. 내 공식직함은 '영업부 배차 계장'이었다. 처음에는 성씨를 잘못 알아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임 씨'가 아니고 '조 가'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다들 여전히 나를 임계장이라 불렀다. 검표원들도 그랬고 점심때 만나는 식당 아주머니들도 그랬다. 알고 보니 그건 배차 계장이라는 내 직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호칭이었다.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長)자를 하나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이다. (p.38) 이름을 불러야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일터인데 그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사람이 하는 일만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그 자리에 누군가 와도 임계장인 것입니다. 이 부분을..
네가 받게 된 가장 처음의 배려, 그리고, 내가 간절히 기다려 온, 너를 향한 타인의 환대...... (p.96) 책은 프랑스로 입양간 주인공이 다큐먼터리를 찍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기를 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상처로 살아가는 주인공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이 버림에 대한 마음은 이젠 엄마가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는 상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자신을 키워준 여러 사람이 나를 버린 사람이 아닌 보듬어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이렇게 자신도 사랑으로 커왔음을 알게됩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p126) 이반 일리치가 죽음은 끝났다고 이야기 했을 때 이반 일리치는 죽었습니다. 그동안 그가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p125) 하면서 용서와 이해를 하게 되었을 때 자신도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죽음은 그 힘들고 고통스러움을 떨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 일까요?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p26) 2장 첫부분 문장입니다. 단순하고 평범하여 끔찍했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표현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관리의 아들로 태아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탄탄가도로 출세 가도를 달린 사람이었고 마흔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의 삶을 보면 보통 사람과 별 반 다르지 않은 욕심에 열심히 삶을 사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반 일리치처럼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싶고 젠채하면서 사는데 그런 세속적인 삶이 끔찍한 것일까요? 한편으론 찔리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p151) 칼이란 흉기가 될 수도 있으나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큰 도구입니다. 그래서, 칼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사랑도 될 수 있습니다. 소설속에서 어머니는 우유부단한 아버지를 대신해 억척스럽고 강인한 어머니입니다. 강해보이지만 애틋한 부부를 보며 부러워 넋을 놓기도하고 바람..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무서운 것은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에 진짜 위험 요소가 있다. 진짜 위험한 것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즉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 (173쪽)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에 나온 유명한 대사입니다. 여러 문제가 같이 터졌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주요한 문제인지 파악을 하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인다고 그것부터 해결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아주 느리게 됩니다. 물이 새서 집이 물이 찼을 경우 먼저 물이 새는 곳을 막거나 물이 떨어지는 곳에 큰 대야를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눈 앞의 물을 닦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진..
아내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동안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아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기사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그는 아내가 본능적으로, 이제 영원히 아들을 잃었음을, 자신들이 도저히 좁히지 못할 어떤 경계선을 기어이 넘어버렸음을 깨닫는 중이라고 여겼다. 그들 앞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263쪽)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내고 오랜만에 부부가 아들을 사는 집에 방문합니다. 사는 곳은 더할나위 없이 더러워 부부가 깜짝 놀라지만, 아들은 그 곳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몇몇 문제는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커가고 있다고 생각한 아들, 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취집을 나서며 그 우리(축사)와도 같은 지저분한 곳이지만 아들의 즐거워하는 모..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55쪽) 주인공과 사귄 후 헤어짐을 인정못하고 스토커를 해온 공대생이 주인공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이후 그 공대생은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죽음으로 연결되어 위 문자가 아련함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곱씹어 보면 섬뜩하기도 합니다. 집착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호소이자 폭력일 뿐입니다. 그래서, 집착이 사랑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놓아줄 수 있어야하고 놓아준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찢어지는 고통을 안게됩니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그 고통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성소수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주인공과 공대생은 남남커플인 것이죠. 하지만, 사랑은 보편적이라 이성애든 동성애든 아련함도 ..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266쪽) 이 말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 부인이 한 말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한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오만인지. 얼마나 섣부른 것인지. 얼마나 겉핥기인지. 김애란 작가가 참여한 2012년 겨울 북콘서트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 가족과 작가들이 모였습니다. 책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으나 아마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의 삶에 대한 책이었나 봅니다. 북콘서트에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패널들에게 합니다. 작가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창근씨 부인인 이자영씨가 위의 말을 합니다. 작가는 직접 경험한 것..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빛의 폭포처럼 흘러 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채,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서 축구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냄새, 학교 가는 아이를 먹이려고 아침밥상을 준비할 때 찌개가 끓으면서 달달거리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인가.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비로소 안다. (88쪽) 김훈 작가가 세월호 3주기를 보내며 쓴 글의 일부입니다. 지금도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먹먹합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내 아이들의 비슷한 또래이다보니 그 아픔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면 우리는 별일 아닌 사소한 일상이 무너짐에 더 아린가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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