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읽지도 않은 새 책 옆에 컵을 놓아둔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컵 밑에서 스물스물 물이 새고 있었나봅니다. 그 물을 새책이 야금야금 흡수하는 줄도 모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대참사를 알아챘습니다.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책이 흠뻑 젖어 찢어질까봐 책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책을 펼쳐보지만 어떻게 말려야할 지 난감합니다. 일단 책을 따뜻한 방바닥에 두기로 합니다. 아직 읽지도 않은 새 책을 이리 망쳐놓았으니 갑갑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다시 책을 살펴봅니다. 이제 페이지를 넘길 수는 있으나 책장을 넘기기엔 아직도 불안합니다. 또 하루가 지나니 이젠 넘겨도 될 만큼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눅눅합니다. 한장 한장 넘기며..
총.균.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 몬드의 또 다른 저작인 '어제까지의 세계'를 보니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진화생물학자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총.균.쇠로 문명에 대한 이야기고 어제까지의 세계도 문명에 대한 이야기라 문명학자 즉 역사학자 또는 인문학자려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생물학자였던 것입니다. ( 참고로 어제까지의 세계는 전통사회 즉 문명의 혜택을 입지 않은 사회를 뉴기니섬에서 연구하고 현재 무엇을 배울까 하는 것을 서술한 책입니다. ) 그러고 보니 진화론이 생물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문화적으로도 통할 수 있겠거니 생각됩니다. 자연선택적 진화론은 변이와 선택(환경, 성)를 기반에 무지무지 긴 시간 ( 또는 많은 세대)를 거쳐 일어납니다. 그 속도는 무지무지 느리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눈으..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는 필경사입니다. 필경사는 글씨를 쓰는 직업으로 그의 일은 현재 복사기가 대체하여 사라진 직업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어머니가 잘 대해준 물장수는 이제 어디서나 나오는 수도로 인해 사라진 직업입니다. 그와 더불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아버지는 잘 안나오는 수도를 조금 낮게 만들어 조금이나마 물이 잘 나오도록 했는데 그 직업도 없어졌습니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직업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직업은 생존이기에 '당연히' 라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고 그 공포는 상당합니다. 최근 도로공사 수납원 시위를 보면서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노선이 점점 증가됨을 보면서 꼭 4차 산업혁명이 아니더라도 사그라지는 직업의 그 사..
1999년 10월 30일. 고등학교 축제를 마친 후 그 뒤풀이로 학생들이 4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한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리중에 있던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 순식간에 호프집까지 올라왔습니다. 불이 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하자 호프집 주인은 돈 내고 가라며 출입문을 닫아버리고 불길이 심상치 않자 자신은 자신만 아는 비상 출입문으로 나가버립니다. 알려진 비상구는 합판으로 막혀 있고 창문도 판자를 붙여놓아 2층밖에 되지 않았으나 호프집에만 120여명이 있었으나 모두 탈출하지 못하고 56명은 죽고 78명은 부상당합니다. 그래서, 3층의 당구장에서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부상자는 나왔지만 사망자는 모두 2층에서 나왔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피해자들은 또 한번 생..
계단은 어찌 보면 인생을 닮았습니다. 꽉 막혀 풀리지 않는 벽처럼 보여도 계속하다 보면 풀리고 갑자기 광야가 나온 듯하고 계속 평탄한 길만 나올 것 같지만 다시 벽이 나오고 이렇게 계속되는 좌절과 평탄이 반복되는 모습이 우리네 인생과 닮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계단도 하나의 경사로처럼 보여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면 그 벽이 그리도 높아 도저히 오를 수 없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생충의 계단처럼 벽이 너무 높아 포기해야만 하고 그 포기의 반복됨으로 저 윗동네와 아랫동네와 명확히 구분되어 반지하 상태를 벗어날 수 없고 반지하를 벗어나려고 비슷한 사람끼리 치고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커의 계단은 희한했습니다. 아서 플랙은 항상 놀림과 좌절 속의 삶이었지만 조커라는 다른 자아를 찾고 그 가파..
영화 조커에서 조커는 시도때도 없이 웃음이 나오며 웃음을 제어할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우리가 기쁠 때나 즐거울 때 나오는 것이 웃음인데 조커를 보면 웃지만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슬픔과 좌절에 더 가깝습니다. 생각해보면 웃음이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누가 나를 보고 웃는 다면 그리 기분이 좋을 리 없고 ( 조커도 지하철에서 웃었기에 봉변당하고 ) 어느 때와 어느 장소에 따라 웃으면 민망해 질 때도 있습니다. 공감이 없는 울음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공감이 없는 웃음은 공감을 더 멀리 보냅니다. 어쩌면 웃음은 울음보다 어려운 것일 수 있습니다. 조커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가졌으나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았으며 조커는 다른 사람이 웃을 때는 웃지 않으나 다른 사람이 웃지 않을 ..
순수(純粹) 대상 그 자체에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이 없음. 우리는 순수해지기 어렵기에 순수함을 추구하고 갈망하고 경외합니다. 전혀 이질적인 것이 없고 잡것이 없는 그 순수함. 그런데 그 순수함을 추구함으로써 그 추구함이 또 하나의 폭력을 낳을 수도 있으며 건강하지 못함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단의 순수함을 위해 보편적인 집단과 다르거나 이질적인 집단을 배척하고 몰아낸다면 폭력이 될 수 있을 뿐 더러 그 집단의 건강성도 해치게 됩니다. 유럽을 꽤 오랜 시간 지배한 합스부르크가가 정치적 안정과 혈통유지를 위해 근친결혼합니다. 그러나, 그 근친결혼은 유전병을 낳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순수함이 자기자신의 건강함도 해치게 됩니다. 집단의 건강함은 순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
지난 달 집과 회사에 복잡한 일이 있었고 그에 따라 머리도 마음도 심숭생숭 자리잡지 못하니 책을 펼쳐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읽기가 취미이니 다행이지 밥벌이였다면 정말 힘들었겠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말하자면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프로는 그 행위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고 아마추어는 그 행위를 취미로 삼아 하는 것일 것입니다. 취미로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잘함과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때곤 그만 둘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밥벌이라면 내가 그만 둘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책읽기가 지겨워지만 잠시 책을 놓을 수 있는 자유는 우리가 취미이기에 아마추어이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
1) A의 키는 150cm입니다. B의 키는 153cm입니다. 당연히 B가 A보다 키가 큽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실만 말했습니다. 2) A는 여덟살입니다. B는 열 여덟살입니다. 분명히 1)은 사실을 말했습니다만~ 2)의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A는 키가 크다고 이야기 하고 B는 키가 작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진실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만 이야기한다고 오해가 없을 수 없습니다. 사실만 이야기하고도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하게끔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정보가 사실만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아닐 수도 전혀 다른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진실도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가정하에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실은 없느지 검토하..
600명이 희귀한 질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이 질병에 대한 대책으로 두가지 방안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프로그램 A를 선택한다면 200명의 목숨만 확실히 구할 것입니다. 만약, 프로그램 B를 선택한다면 600명의 목숨을 구할 확률은 1/3, 모두 사망할 확률은 2/3입니다. 당신은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자~~ 고르셨나요? 아마도 대부분 프로그램 A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사람의 목숨과 같이 중요한 것은 도박보다 그나마 확실함을 선택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위의 질문의 말을 바꿔보겠습니다. 만약, 프로그램 A를 선택하면 확실히 400명은 사망할 것입니다. 만약, 프로그램 B를 선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은 1/3,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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